탐험가와 발명가 퀴즈 12문제 - 마젤란 함대 세계일주,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 힐러리와 텐징 에베레스트, 라이트 형제, 에디슨과 테슬라 전류 전쟁, 벨의 전화 특허, 굿이어 가황 고무, 다게르 사진, 구텐베르크와 직지, 노벨 다이너마이트, 장영실 자격루, 벤츠 자동차

먼저 도착한 사람, 먼저 만든 사람, 그리고 그 뒤에 가려진 사람을 확인해 봅니다.

12문제이며 소요 시간은 3분 안팎입니다. 전해 오는 미담보다 확인된 기록을 기준으로 삼았고, 결과 아래에서 전체 정답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정답과 해설

  1. 마젤란 함대의 세계일주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마젤란은 항해 도중 필리핀에서 전투로 사망했고, 남은 배 한 척이 엘카노의 지휘 아래 에스파냐로 돌아와 항해를 마쳤다. 1519년 다섯 척으로 떠난 함대는 남아메리카 남단의 해협을 지나 태평양을 건넜고, 마젤란은 1521년 필리핀의 막탄에서 현지 세력과의 전투 중 사망했습니다. 이후 지휘를 이어받은 엘카노가 빅토리아호를 이끌고 향료 제도를 거쳐 아프리카를 돌아 1522년 에스파냐에 닿았습니다. 돌아온 배는 한 척, 사람은 스무 명 안팎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이미 계산까지 이루어진 지식이었고, 이 항해가 준 것은 실제로 한 바퀴 돌 수 있음을 보인 증명과 태평양이 얼마나 넓은지에 대한 감각이었습니다.
  2. 남극점 도달 경쟁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1911년 12월에 먼저 도달했고, 뒤이어 도착한 영국의 스콧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목숨을 잃었다. 아문센 일행은 개썰매를 주된 이동 수단으로 삼고 보급품을 미리 여러 지점에 묻어 두는 방식으로 1911년 12월 14일 남극점에 도달한 뒤 전원이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스콧 일행은 조랑말과 동력 썰매를 함께 썼으나 여의치 않아 사람이 끄는 구간이 길어졌고, 1912년 1월 남극점에 닿았을 때 이미 노르웨이 국기를 발견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악천후와 식량 부족이 겹쳐 다섯 명 모두 사망했으며, 스콧이 남긴 일지가 나중에 발견되어 그 마지막이 알려졌습니다.
  3. 에베레스트 첫 등정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1953년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함께 정상에 섰다. 영국이 조직한 원정대의 일원으로 두 사람이 1953년 5월 29일 정상에 올랐습니다. 두 사람 모두 누가 먼저 발을 디뎠는지를 두고 굳이 다투지 않았고, 함께 올랐다는 쪽으로 이야기해 왔습니다. 텐징 노르가이는 여러 차례 원정에 참여한 경험 많은 산악인이었지 단순한 짐꾼이 아니었습니다. 1978년에는 메스너와 하벨러가 보조 산소 없이 정상에 올랐고, 이후에도 무산소 등정이 이어졌습니다. 에베레스트가 가장 높은 산이라는 사실은 19세기 측량으로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4. 라이트 형제가 1903년에 해낸 일로 맞는 것은? — 정답: 엔진을 단 비행기로 사람이 탄 채 조종하며 지속적으로 나는 데 성공했고, 첫 비행은 몇 초에 지나지 않았다. 1903년 12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의 키티호크 부근에서 이루어진 첫 비행은 12초 동안 약 36미터를 나는 데 그쳤고, 같은 날 네 번째 비행은 조금 더 길었습니다. 사람이 하늘에 뜬 것 자체는 이보다 훨씬 앞서 열기구로 이루어졌고, 글라이더 비행도 앞서 있었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몫은 엔진 동력과 조종 가능한 구조를 함께 갖춘 기체를 만들어 반복해 날 수 있게 한 데 있습니다. 특히 날개를 비틀어 좌우 균형을 잡는 방식이 이후 조종 장치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5. 에디슨과 테슬라 사이의 이른바 전류 전쟁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에디슨은 직류를,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는 교류를 밀었고 먼 거리로 전기를 보내는 데 유리한 교류 방식이 송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에디슨은 자신이 구축한 직류 배전망을 지키려 했고, 테슬라의 교류 방식 특허를 사들인 웨스팅하우스가 이에 맞섰습니다. 교류는 변압기로 전압을 쉽게 올리고 내릴 수 있어 높은 전압으로 멀리 보내고 쓰는 곳에서 낮추는 방식이 가능했고, 이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890년대 시카고 만국박람회 조명과 나이아가라 발전소 사업을 교류 진영이 맡으면서 흐름이 굳어졌습니다. 다만 오늘날에도 초고압 장거리 송전이나 전자기기 내부처럼 직류가 더 알맞은 자리가 따로 있습니다.
  6. 전화 특허를 둘러싼 사정으로 맞는 것은? — 정답: 벨이 1876년 특허를 받았지만 같은 날 일라이셔 그레이도 관련 서류를 제출했고, 이후 오랜 기간 소송과 이의 제기가 이어졌다. 벨은 1876년 미국에서 전화 관련 특허를 받았고,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일라이셔 그레이가 비슷한 장치에 대한 서류를 특허청에 냈습니다. 이 우연 때문에 누가 먼저였는지, 서류 처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다툼이 이어졌습니다. 그 밖에도 이탈리아 출신 안토니오 무치처럼 앞서 비슷한 장치를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 뒤늦게 재조명되기도 했습니다. 발명이 한 사람의 순간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도달한 결과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7. 찰스 굿이어와 가황 고무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고무에 황을 섞어 열을 가하면 더위에 물러지지 않고 추위에 갈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정작 본인은 특허 분쟁에 시달리며 넉넉하게 살지 못했다. 천연 고무는 여름에 끈적하게 늘어지고 겨울에 딱딱해져 쓰임새가 좁았습니다. 굿이어는 여러 해에 걸쳐 온갖 물질을 섞어 보다가 고무와 황이 섞인 덩어리가 뜨거운 곳에 닿았을 때 성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처리를 거친 고무는 온도가 변해도 탄력을 유지했습니다. 다만 특허를 지키는 과정에서 소송이 이어졌고 빚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굿이어라는 이름을 단 타이어 회사는 그가 죽고 수십 년 뒤에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기려 세운 것으로, 본인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8. 사진술의 초기 역사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프랑스의 다게르가 니엡스의 연구를 이어받아 은판에 상을 맺히게 하는 방식을 완성했고, 1839년 공개되어 널리 퍼졌다. 니엡스는 빛에 반응하는 물질을 이용해 상을 고정하는 실험을 먼저 했고, 다게르는 그와 함께 작업하다 그가 죽은 뒤 방식을 다듬어 은을 입힌 금속판을 쓰는 형태로 완성했습니다. 1839년 프랑스에서 공개되면서 초상 사진관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다만 이 방식은 판 하나에 한 장만 남고 복제가 어려웠으며, 초기에는 노출에 오래 걸려 사람들이 머리를 받침대에 고정한 채 굳은 표정으로 앉아야 했습니다. 음화를 만들어 종이에 여러 장 뽑는 방식은 같은 시기 영국의 탤벗 쪽에서 발전해 이후 주류가 되었습니다.
  9.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직지의 관계로 맞는 것은? — 정답: 구텐베르크는 15세기 중반 유럽에서 금속활자 인쇄술을 실용화했고, 고려의 직지는 그보다 앞선 1377년에 금속활자로 찍은 책으로 현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직지심체요절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불교 책으로, 현재 하권 한 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고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구텐베르크가 42행 성경을 찍은 것은 1450년대이므로 시기로는 직지가 앞섭니다. 다만 구텐베르크 쪽은 활자 주조와 기름 잉크, 압착식 인쇄기를 함께 갖춘 체계여서 책을 대량으로 찍어 내는 산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지식이 퍼지는 속도를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별도로 평가됩니다. 최초냐 아니냐보다 두 성과의 성격이 다르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10. 알프레드 노벨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다루기 위험한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스며들게 해 안정시킨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고, 유산을 기금으로 남겨 노벨상이 시작되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위력이 크지만 충격에 쉽게 터져 사고가 잦았습니다. 노벨은 이를 규조토 같은 흡수성 물질에 스며들게 해 운반과 취급이 훨씬 안전한 형태로 만들었고, 광산과 철도 공사에 널리 쓰이면서 큰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유언으로 재산의 대부분을 기금으로 돌리게 했고, 1901년부터 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학·평화 다섯 분야에서 시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경제학 분야는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이 기금을 내어 만든 것으로 유언에 있던 분야가 아닙니다. 화약 자체는 훨씬 오래전 중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1.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물의 흐름으로 시간을 재고 정해진 때가 되면 인형과 장치가 움직여 종과 북으로 시각을 알리도록 만든 물시계다. 자격루는 세종 때 만들어진 물시계로, 물이 일정하게 흘러 들어가 부표를 밀어 올리면 그 힘으로 구슬이 굴러가 인형이 종과 북, 징을 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사람이 지켜보다 알리는 방식이 아니라 장치가 스스로 시각을 알린다는 점이 핵심이어서 이름에 스스로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같은 시기 장영실은 오목한 솥 모양의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습니다. 별을 관측하는 기구는 혼천의 계열이고, 비의 양을 재는 기구는 측우기로 따로 있습니다.
  12. 내연기관 자동차의 등장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1886년 독일의 카를 벤츠가 휘발유 기관을 얹은 세 바퀴 차량으로 특허를 받았고, 이 무렵이 실용적인 자동차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카를 벤츠가 1886년 특허를 받은 차량은 바퀴가 셋이었고 작은 휘발유 기관을 뒤쪽에 달았습니다. 2년 뒤인 1888년 아내 베르타 벤츠가 아들들과 함께 100킬로미터 넘는 거리를 직접 몰고 다녀오면서 실제로 쓸 수 있는 물건임을 알린 일화도 유명합니다. 비슷한 시기 다임러와 마이바흐도 기관을 얹은 탈것을 만들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를 이용한 대량 생산으로 자동차를 널리 보급한 인물이지 발명자가 아니며, 증기로 움직이는 차량은 18세기부터 시도되어 내연기관보다 앞섰습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

마젤란은 1521년 필리핀에서 사망했고, 세계일주를 마친 것은 엘카노가 이끈 빅토리아호 한 척이었습니다. 남극점에는 아문센 일행이 1911년 12월에 먼저 닿아 전원 무사히 돌아왔고, 이듬해 1월 도착한 스콧 일행은 귀환 도중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에베레스트 첫 등정은 1953년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함께 이루었고, 1978년에는 무산소 등정도 나왔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1903년에 해낸 것은 사람이 처음 하늘에 뜬 일이 아니라 엔진을 단 기체를 조종하며 반복해 날린 일이며, 첫 비행은 12초 남짓이었습니다.

특허와 분쟁의 뒷면

전류 전쟁에서는 변압으로 장거리 송전에 유리한 교류가 표준이 되었고, 에디슨이 직류를,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가 교류를 밀었습니다. 벨은 1876년 전화 특허를 받았지만 같은 날 일라이셔 그레이도 서류를 냈고 이후 오랜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굿이어는 고무에 황을 섞어 가열하면 온도에 견딘다는 것을 알아냈으나 특허 분쟁에 시달렸고, 같은 이름의 타이어 회사는 사후에 다른 사람들이 세운 것입니다. 다게르는 니엡스의 작업을 이어 은판 사진을 완성해 1839년 공개했으며, 초기 사진은 복제가 어렵고 노출 시간이 길었습니다.

기술이 세상을 바꾼 순간

구텐베르크는 1450년대에 금속활자 인쇄를 실용화했고, 1377년에 찍은 직지는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올라 있습니다.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스며들게 해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고 유산을 기금으로 남겨 1901년부터 다섯 분야에서 시상이 시작되었으며, 경제학상은 1968년에 별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장영실의 자격루는 물의 흐름으로 시간을 재고 장치가 스스로 종과 북을 쳐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입니다. 카를 벤츠는 1886년 세 바퀴 차량으로 특허를 받았고, 헨리 포드는 발명자가 아니라 대량 생산으로 보급한 인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탐험과 발명의 기록에서 무엇을 최초로 볼지 어떻게 정하나요?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때문에, 먼저 어떤 최초인지를 나누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는 착상의 최초입니다. 비슷한 원리를 먼저 떠올리고 시험한 사람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기록으로 남지 않으면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둘째는 특허나 공표의 최초입니다. 서류가 접수된 날짜가 남기 때문에 다투기에 명확하지만, 같은 날 여러 건이 들어오거나 나라마다 제도가 달라 순서가 뒤집히기도 합니다. 벨과 그레이의 사례가 그렇습니다. 셋째는 실용화의 최초입니다. 실제로 쓸 만한 물건이 되어 사람들의 생활을 바꾼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 방식으로, 페니실린이나 자동차처럼 발견과 보급 사이가 먼 경우에 특히 중요합니다. 넷째는 현존하는 것 가운데의 최초입니다. 직지가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본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할 때의 그 최초가 여기에 해당하며, 더 오래된 것이 있었더라도 남아 있지 않으면 이렇게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탐험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도달의 최초와 생환의 최초, 무산소나 단독처럼 조건을 붙인 최초가 각각 다릅니다. 아문센과 스콧을 비교할 때 도달만이 아니라 돌아온 여부까지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어떤 주장을 확인할 때는 최초라는 말 뒤에 어느 범위, 어느 조건에서의 최초인지를 붙여 보고, 근거로 제시된 것이 특허 문서인지 항해 일지인지 후대의 전기인지를 살피면 대부분 정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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