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과 해설
- 고딕 건축이 반원 아치 대신 끝이 뾰족한 첨두아치를 쓴 구조적 이유는? — 정답: 같은 폭에서도 높이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하중이 옆으로 밀어내는 힘이 줄어 더 높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원 아치는 폭이 정해지면 높이도 자동으로 정해집니다. 폭의 절반이 곧 높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폭이 서로 다른 공간을 같은 높이로 덮으려면 억지스러운 조정이 필요했습니다. 첨두아치는 두 개의 곡선을 비스듬히 만나게 한 형태라 폭과 무관하게 높이를 정할 수 있어, 복잡한 평면 위에도 천장 높이를 맞춰 덮을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힘의 방향입니다. 아치는 위에서 누르는 힘을 옆으로도 밀어내는데, 이 옆으로 미는 힘을 횡추력이라고 부릅니다. 아치가 뾰족할수록 힘이 더 수직에 가깝게 내려와 벽이 바깥으로 밀려나는 부담이 줄어듭니다. 벽에 걸리는 부담이 줄면 더 높이 올릴 수 있고 벽도 얇아질 여지가 생깁니다. 고딕 성당이 위로 솟구치는 인상을 주는 것은 취향의 결과이기 전에 이 계산의 결과입니다.
- 고딕 성당 바깥으로 뻗어 나온 플라잉버트레스가 하는 일은? — 정답: 천장 볼트가 벽을 바깥으로 미는 힘을 건물 밖 부벽으로 넘겨 받아 주어, 벽을 얇게 하고 창을 크게 낼 수 있게 한다. 높고 넓은 돌 천장은 아래로 누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벽을 바깥으로 밀어냅니다. 이 힘을 견디려면 벽이 아주 두꺼워야 하고, 두꺼운 벽에는 큰 창을 낼 수 없습니다. 플라잉버트레스는 그 힘을 벽에서 받아 공중으로 건너뛰어 건물 바깥에 따로 세운 굵은 부벽으로 넘깁니다. 벽 자체가 버틸 필요가 줄어드니 벽을 얇게 만들고 그 자리를 창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됩니다. 고딕 성당의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이 구조적 여유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부벽 위에 얹힌 뾰족한 첨탑도 순전한 장식은 아니어서, 무게를 더해 부벽이 밀리지 않게 눌러 주는 역할을 겸합니다. 그래서 고딕 성당은 안에서 보면 가볍고 위로 뻗은 공간이지만 밖에서 보면 힘을 받아 내는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안팎의 인상이 크게 다른 것이 이 양식의 특징입니다.
- 고딕보다 앞선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징으로 맞는 것은? — 정답: 반원 아치와 통형 볼트를 쓰고 벽이 두꺼우며 창이 작아 내부가 어둡고 묵직하다. 로마네스크는 이름 그대로 로마의 방식을 이어받은 양식이라 반원 아치와 반원을 길게 늘인 통형 볼트를 씁니다. 문제는 이 통형 볼트가 벽 전체를 고르게 바깥으로 민다는 점입니다. 그 힘을 받아 낼 별도의 장치가 아직 없었기 때문에 벽 자체를 두껍게 만들 수밖에 없었고, 두꺼운 벽에 큰 구멍을 뚫으면 약해지므로 창이 작아졌습니다. 그래서 실내가 어둑하고 육중한 인상을 줍니다. 이 한계를 푸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고딕입니다. 볼트를 갈비뼈 같은 리브로 나눠 하중을 몇 개의 선으로 모으고, 그 선이 닿는 기둥으로 힘을 내려보내고, 남은 옆 방향 힘을 플라잉버트레스로 밖에 넘겼습니다. 벽이 더 이상 전체를 버틸 필요가 없어지자 그 자리에 창이 들어섰습니다. 두 양식을 나란히 놓고 보면 건축사가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연쇄라는 것이 잘 드러납니다.
- 아치가 무너지지 않고 하중을 견디는 원리로 맞는 것은? — 정답: 위에서 누르는 힘이 쐐기 모양 돌들을 서로 밀어붙이는 압축력으로 바뀌어 곡선을 따라 양쪽 기둥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돌이나 벽돌은 눌리는 데는 매우 강하지만 잡아당겨지거나 휘어지는 데는 약합니다. 긴 돌을 가로로 걸치면 가운데 아래쪽이 잡아당겨지면서 부러지므로 건널 수 있는 폭이 짧습니다. 아치는 이 약점을 피해 갑니다. 쐐기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곡선으로 배열해 두면 위에서 누르는 힘이 돌들을 서로 밀어붙이는 압축으로 바뀌고, 그 압축이 곡선을 따라 흘러 양쪽 받침으로 내려갑니다. 돌이 가장 잘 견디는 방식으로만 힘을 받게 만든 셈입니다. 가운데 맨 위에 마지막으로 끼우는 쐐기돌을 키스톤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들어가야 비로소 힘의 경로가 닫힙니다. 그전까지는 아치가 스스로 서지 못하므로 시공 중에는 나무로 짠 임시 틀을 아래에 받쳐 두었다가 키스톤을 끼운 뒤 걷어 냅니다. 대신 아치는 반드시 옆으로 미는 힘을 남기므로, 양쪽에 그 힘을 받아 줄 두꺼운 벽이나 이웃한 아치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 돔이 받는 힘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 정답: 아래로 누르는 힘과 함께 아랫부분을 바깥으로 벌리려는 힘이 생기므로, 그 부분을 두껍게 하거나 띠나 사슬로 둘러 잡아 주어야 한다. 돔은 아치를 한 바퀴 돌린 형태라 아치와 같은 성질을 가집니다. 하중이 곡면을 따라 내려오면서 아랫부분을 바깥으로 벌리려 하는데, 이 힘을 잡지 못하면 돔의 밑단부터 갈라집니다. 옛 건축은 이 문제를 밑단을 두껍게 하거나 위쪽으로 갈수록 재료를 가볍고 얇게 쓰는 방식으로 풀었습니다. 로마의 판테온이 대표적인 예로, 지름과 내부 높이가 모두 약 43.3미터인 반구형 돔이면서 위로 갈수록 두께를 줄이고 가벼운 골재를 섞었으며 천장 격자를 파내 무게를 덜었습니다. 꼭대기에 뚫린 구멍인 오큘러스도 가장 부담이 큰 자리의 재료를 아예 없앤 것이라 구조적으로 이치에 맞습니다. 후대에는 밑단을 쇠사슬이나 철제 링으로 둘러 벌어짐을 직접 잡아 주는 방법이 쓰였고,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대성당 돔은 안팎 두 겹으로 나눈 구조와 둘레를 묶는 장치를 함께 써서 거대한 지름을 임시 틀 없이 올린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 르네상스 건축이 지향한 방향으로 맞는 것은? — 정답: 고대 그리스 로마의 기둥 양식과 비례 체계를 되살려 대칭과 명료한 질서를 앞세웠다. 르네상스는 중세와 단절하고 고대를 다시 읽으려 한 흐름이었고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딕의 뾰족한 아치 대신 반원 아치가 돌아오고, 도리아와 이오니아와 코린트로 구분되는 고전 기둥 양식이 다시 쓰였습니다. 무엇보다 비례가 중심에 놓였습니다. 평면과 입면의 각 부분이 단순한 정수비로 맞물리도록 설계하고, 정사각형과 원처럼 명료한 도형을 기본형으로 삼았습니다. 건물을 정면에서 보면 좌우가 대칭이고 층마다 높이의 관계가 규칙적이라 한눈에 질서가 읽힙니다. 이 시기에 건축가라는 직업의 성격도 달라져, 현장의 장인이 아니라 도면과 이론을 다루는 사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가 그 전환을 보여 주는 이름입니다. 정리하면 고딕이 구조의 한계를 밀어 올리는 방향이었다면 르네상스는 눈에 보이는 질서를 다듬는 방향이었습니다.
- 바로크 건축의 특징으로 맞는 것은? — 정답: 벽과 평면에 곡선과 타원을 끌어들이고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연출해 보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려 했다. 르네상스가 정지된 질서를 보여 준다면 바로크는 움직임을 만듭니다. 정면 벽이 안으로 들어갔다 밖으로 나오며 물결치고, 평면에 원 대신 타원이 들어오고, 기둥과 처마가 겹쳐 그림자가 층층이 생깁니다. 천장에는 하늘이 열린 것처럼 그린 그림을 얹고 숨은 창으로 빛을 끌어들여 특정한 자리만 밝게 만듭니다. 보는 사람이 어디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걷느냐에 따라 인상이 계속 달라지도록 설계한 것이 핵심입니다. 이런 방향은 시대적 배경과 함께 이해되곤 합니다.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가 신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간을 필요로 했고, 절대왕정은 권력의 규모를 눈으로 보여 줄 건축을 원했습니다. 이후 등장한 로코코는 규모를 줄이고 실내 장식을 섬세하고 가볍게 다듬은 흐름이라 바로크의 연장으로 보기도 하고 별도로 나누기도 합니다.
- 이슬람 건축에서 기하 문양과 서예 장식이 발달한 배경으로 맞는 것은? — 정답: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종교 공간에 묘사하는 것을 삼가는 전통이 있어, 반복되는 기하 무늬와 식물 문양과 글씨가 장식의 중심이 되었다. 모스크를 비롯한 종교 공간에서는 형상 묘사를 피하는 전통이 자리 잡았고, 그 대신 다른 방향의 장식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하나는 무한히 이어지는 듯한 기하 무늬입니다. 다각형과 별 모양을 규칙에 따라 반복해 벽과 바닥과 천장을 덮는데,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구성이 특징입니다. 다른 하나는 넝쿨과 잎을 양식화해 얽어 놓은 아라베스크이고, 또 하나는 경전 구절을 조형적으로 다듬은 서예입니다. 구조와 장식이 만나는 요소도 있습니다. 벌집처럼 층층이 매달린 무카르나스는 사각형 벽에서 둥근 돔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면서 그 자체가 화려한 장식이 됩니다. 여기에 중정과 수반, 격자창으로 걸러 들어오는 빛, 첨탑처럼 지역마다 형태가 다른 요소가 더해집니다. 넓은 지역에 걸친 흐름이라 스페인과 이란과 인도의 건물이 서로 상당히 달라 보이는 것도 이 양식의 특징입니다.
- 나무 기둥과 보로 뼈대를 짜는 가구식 구조와 돌이나 벽돌을 쌓는 조적식 구조의 차이로 맞는 것은? — 정답: 가구식은 기둥과 보가 하중을 받으므로 벽을 자유롭게 뚫을 수 있고, 조적식은 벽 자체가 하중을 받으므로 개구부를 크게 내기 어렵다. 두 방식은 하중을 받는 주체가 다릅니다. 가구식은 기둥과 보가 짜 맞춰진 뼈대가 지붕을 받치고 벽은 그 사이를 메우는 역할이라, 벽을 통째로 없애고 문을 달거나 창을 넓게 열어도 구조가 유지됩니다. 한국과 일본과 중국의 전통 목조 건축이 여기에 속하고, 그래서 한옥에서 문을 들어 올려 방과 마루를 트는 일이 가능합니다. 조적식은 벽 자체가 구조라서 벽에 구멍을 내는 만큼 약해집니다. 그래서 창이 작고 벽이 두껍고, 넓은 개구부가 필요하면 그 위에 아치를 얹어 하중을 옆으로 돌려야 합니다. 유럽 석조 건축이 아치와 볼트를 정교하게 발전시킨 배경이 이것입니다. 지진에 대한 거동도 달라서 가구식은 접합부가 어느 정도 움직이며 힘을 흘려보내는 반면 조적식은 벽이 갈라지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한옥의 구조를 더 보고 싶다면 한옥 건축 퀴즈에 자세히 있습니다.
-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에서 벽이 통유리나 자유로운 평면으로 바뀔 수 있었던 기술적 배경은? — 정답: 철골과 철근콘크리트 골조가 하중을 대신 받게 되면서 벽이 구조에서 풀려나 칸막이 역할만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돌과 벽돌로 쌓던 시절에는 벽이 곧 구조였기 때문에 벽의 위치와 두께가 평면을 결정했습니다. 철골과 철근콘크리트 기둥이 하중을 받아 내게 되면서 이 제약이 풀렸습니다. 기둥만 서 있으면 나머지는 어디에 놓아도 되므로 방의 배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외벽도 하중과 무관해져 통유리로 감싸거나 가로로 길게 창을 낼 수 있게 됩니다. 르코르뷔지에가 정리한 다섯 가지 원칙이 이 변화를 압축해 보여 줍니다. 건물을 기둥으로 띄우고, 옥상을 정원으로 쓰고, 평면을 자유롭게 짜고, 정면을 구조에서 분리하고, 가로로 긴 창을 내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모두 벽이 하중에서 해방되었기에 가능한 항목입니다. 다만 벽이 구조를 맡지 않게 되면서 단열과 방수, 그리고 유리면을 통한 열 손실과 과열이 새로운 과제로 넘어왔고, 이는 지금까지도 유리 건물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 19세기 말 미국에서 마천루가 등장할 수 있었던 조건으로 맞는 것은? — 정답: 철골 골조로 층수를 올릴 수 있게 된 것과 안전장치를 갖춘 승강기가 실용화된 것이 함께 맞물렸다. 높은 건물은 구조와 이동이 함께 풀려야 성립합니다. 조적식으로 층수를 올리면 아래층 벽이 위층 전부를 받아야 해서 밑으로 갈수록 벽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두꺼워지고, 그만큼 쓸 수 있는 바닥 면적이 줄어듭니다. 철골 골조는 가는 기둥으로 같은 하중을 받아 내므로 이 한계를 넘습니다. 하지만 구조만 되면 끝이 아닙니다. 사람이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한다면 위층은 쓸모가 없어지므로 승강기가 필요했고, 특히 줄이 끊어져도 추락하지 않게 잡아 주는 안전장치가 나온 뒤에야 사람들이 승강기를 신뢰하고 탈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강철 대량 생산, 전등과 상하수 설비, 그리고 도심 땅값 상승이라는 경제적 압력이 겹쳤습니다. 외벽은 하중에서 벗어나 커튼월이라 부르는 얇은 껍질이 되었고, 나중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초고층 설계의 중심 과제로 옮겨 갔습니다.
-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던 건축이 등장한 배경으로 맞는 것은? — 정답: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만 남긴 모더니즘의 결과물이 어디서나 비슷해 보인다는 비판이 쌓이면서, 역사적 요소와 지역성과 유희적 장식을 다시 끌어들였다. 모더니즘은 장식을 걷어 내고 기능과 구조에 충실하자는 태도에서 출발했고 20세기 중반에는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시마다 비슷한 유리 상자가 늘어서면서 그 자리의 역사와 맥락이 지워진다는 불만이 나왔습니다. 포스트모던은 그 반작용으로, 고전 기둥이나 박공 같은 옛 요소를 일부러 인용하고 색과 장식을 다시 쓰고 때로는 농담처럼 비틀어 넣었습니다. 장식은 죄악이라는 초기 모더니즘의 선언에 정면으로 답한 셈입니다. 다만 이 흐름 역시 표면적인 인용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후 건축은 하나의 사조로 묶기 어려운 여러 갈래로 흩어집니다.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향, 컴퓨터 설계로 복잡한 곡면을 다루는 방향, 에너지와 재료의 순환을 앞세우는 방향이 함께 진행되고 있어서 지금은 지배적인 하나의 양식을 말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아치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돌과 벽돌은 눌리는 데 강하고 당겨지는 데 약합니다. 아치는 위에서 누르는 힘을 쐐기돌들이 서로 밀어붙이는 압축으로 바꿔 양쪽 받침으로 흘려보내는 장치이고, 마지막에 끼우는 키스톤이 들어가야 경로가 닫힙니다. 대신 옆으로 미는 횡추력이 남습니다. 로마네스크는 이 힘을 두꺼운 벽으로 받았기 때문에 창이 작고 실내가 어둡습니다. 고딕은 첨두아치로 힘을 더 수직에 가깝게 내리고, 리브 볼트로 하중을 몇 개의 선에 모으고, 남은 힘을 플라잉버트레스로 건물 밖 부벽에 넘겼습니다. 벽이 버틸 필요가 줄자 그 자리에 큰 스테인드글라스가 들어섰습니다.
돔과 그 이후
돔은 아치를 한 바퀴 돌린 것이라 아랫부분을 바깥으로 벌리려는 힘이 생기고, 그래서 밑단을 두껍게 하거나 띠와 사슬로 둘러 잡아 줍니다. 판테온은 지름과 내부 높이가 모두 약 43.3미터인 반구형 돔에서 위로 갈수록 가볍고 얇게 만들고 꼭대기에 오큘러스를 뚫어 부담을 덜었습니다. 이후 르네상스는 고전의 비례와 대칭을 되살렸고, 바로크는 곡면과 타원과 빛의 대비로 움직임을 만들었으며, 이슬람 건축은 형상 묘사를 삼가는 전통 위에서 기하 문양과 아라베스크와 서예, 무카르나스를 발전시켰습니다.
벽이 하중에서 풀려난 뒤
목조 가구식은 기둥과 보가 하중을 받아 벽을 자유롭게 뚫을 수 있고, 조적식은 벽 자체가 구조라 개구부를 크게 내기 어려워 아치가 필요했습니다. 20세기에 철골과 철근콘크리트 골조가 등장하면서 벽은 구조에서 완전히 풀려났고, 자유로운 평면과 가로로 긴 창과 유리 외벽이 가능해졌습니다. 마천루는 여기에 안전장치를 갖춘 승강기가 더해져 성립했습니다. 그 뒤 어디서나 비슷해 보인다는 비판 속에 포스트모던이 역사적 요소와 장식을 다시 끌어들였고, 지금은 하나의 지배적 양식 없이 여러 갈래가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건축 양식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어떻게 되나요?
지역마다 다르지만 서양 건축을 기준으로 하면 대략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첫째, 고대 그리스는 기둥과 보로 이루어진 가구식에 가깝고 도리아와 이오니아와 코린트로 기둥 양식이 나뉩니다. 둘째, 로마는 아치와 볼트와 돔을 본격적으로 써서 넓은 실내 공간을 만들었고 콘크리트를 대규모로 활용했습니다. 셋째, 중세 초기의 로마네스크는 반원 아치와 통형 볼트를 쓰면서 벽이 두껍고 창이 작습니다. 넷째, 고딕은 첨두아치와 리브 볼트와 플라잉버트레스로 하중을 몇 개의 선으로 모아 벽을 얇게 하고 큰 창을 냈습니다. 다섯째, 르네상스는 고전의 비례와 대칭을 되살렸고 반원 아치가 돌아옵니다. 여섯째, 바로크는 곡면과 타원과 극적인 빛으로 움직임을 만들었고 로코코가 그 뒤를 잇습니다. 일곱째,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는 고전과 고딕을 다시 꺼내 쓰는 복고 경향과 철과 유리라는 새 재료가 함께 나타납니다. 여덟째, 20세기 모더니즘은 철골과 철근콘크리트 골조로 벽을 구조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평면과 유리 외벽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아홉째,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던은 그 획일성에 대한 반발로 역사적 요소와 장식을 다시 끌어들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목록은 서양 중심의 정리이고 실제로는 지역과 시기가 겹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이슬람권, 동아시아 목조,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석조는 각각 다른 계통을 따라 발전했으므로 하나의 직선으로 이어 붙이면 왜곡이 생깁니다. 한국 전통 건축 쪽은 한옥 건축 퀴즈에서 따로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정답과 해설은 어디서 보나요?
결과 화면 아래 "정답과 해설" 안내에 12문제 전체의 정답과 항목별 설명이 문제 순서대로 정리돼 있습니다.